2008. 10. 13. 16:17

대한민국 IT 근로조건, 한탄만 하시겠습니까?


IT, 특히 인터넷과 게임 개발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의 블로그를 찾아다니다 보면 낮은 임금 수준과 열악한 근무 조건 때문에 한숨짓는 글들을 많이 읽게 됩니다. 물론 IT업계의 임금 격차는 미국의 빈부 격차만큼이나 심하니 임금 수준에 대해서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는 어렵겠습니다. 다만 흔히 말하는 근무 조건이라는게 야근 업무에 관한 이야기라는게 참 마음이 아픕니다.

저 역시 그 사정을 모르지 않습니다. 터무니 없이 짧게 잡혀진 프로젝트 기간과 어쩌든지 자기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중간 관리자들의 무서운 눈치 때문에 1일 12시간 근무에 토요일, 공휴일 반납까지도 부지기수로 이루어지죠. 제가 유학을 결심하기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개발인들끼리의 퇴근 인사가 "그럼 좀 있다 뵙곘습니다."였습니다. 이 한 마디가 대한민국 근로조건을 모두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근무 환경이 이제는 외국에도 잘 알려져서 주위에 프로그래밍을 업으로 하고 살고 있는 독일 친구들은 한국의 개발 환경에 대해 안타까운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말인즉슨 아시아의 IT시장이 급속히 발전하는 이유는 60~70년대의 방직 공장처럼 깜깜한 공장에 프로그래머들을 수백명씩 가두어두고 관리자들이 뒤에서 채찍질을 해가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겁니다. 아시아, 특히 한국의 IT근무 환경을 신문의 시사 만평처럼 이해하는 그들이 우습기도 하지만, 그것을 100% 부정만 할 수 없는 현실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연구, 개발, 프로그래밍 역시 창조적인 직업이기 때문에 개발인들에게는 평생을 애정을 가지고 이어갈 수 있는 직업입니다. 간혹 마흔이 넘어서면 더 이상 프로그래밍 하고 싶지는 않다라는 분들을 보게 되는데, 개발이 지겹고 하기 싫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차피 개발업에 오래 있을 수 없을 테니 논의할 필요가 없겠지요. 물론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고 화면에 뿌려주는 단순 작업들만 무한히 되풀이 하는 것을 개발이라고 칭하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개발이라는 것이 즐겁고 오래 오래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지금이라도 눈을 더 넓은 곳으로 돌려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더 넓은 곳이라는 것이 해외를 칭하는 말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이미 한국의 IT 근로 조건에 회의를 품은 많은 개발인들이 여러 교육 시설의 힘을 얻어 일본, 호주, 미국등으로 취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100%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성공한 이들의 100%가 만족을 하는 것도 아니며 그러기 위해서는 또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지식 노동자의 근로조건이 바뀌어지기를 기다리면서 평생 수동적으로 불평만 하고 사는 것이 옳은 일이겠습니까?

이곳 독일에서 어학을 하면서 만난 한 친구 얘기를 할까 합니다. 그 친구는 베네주엘라에서 왔고 약 2년간의 어학과 재교육을 통해서 조그만 웹 프로그래밍 업체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베네주엘라에서의 커리어를 인정받아서 취업 비자도 쉽게 획득한 그 친구의 하루 일과는 오전 7시에 시작합니다. 보통 점심 시간이 따로 없는 직장이 많기 때문에 그 역시 일하는 도중에 준비해간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웁니다.

법정 근무 시간인 8시간이 끝나고 퇴근하는 시간이 오후 3시라고 합니다. 동절기에는 한시간씩 뒤로 밀린다고 하니 그래도 4시경에는 퇴근하는 셈이군요. 근로 감독이 철저한 독일에서는 연장 근무가 하고 싶어도 함부로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 친구가 한 달에 버는 돈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적어도 하루를 두 단위로 쪼개서 살고 있습니다. 프로그래밍을 너무 좋아하는 이 친구는 늙어 죽는 그 순간까지도 프로그래밍을 하고 싶다고 할 정도입니다. 개발이라고 하면 하루 6시간도 안되는 수면 시간과 토요일, 공휴일을 모두 반납한 연장근무를 먼저 떠 올리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참 상상하기 힘든 마음가짐 아닙니까?

오래 오래 IT 개발업에 종사하고 싶은데 한국의 노동 조건이 너무나도 불만스러우시다면 Java, C언어 책 잠시 제껴 두시고 영어나 일본어를 시작해 보시는건 어떻겠습니까?